
아버지 어머니가 농사를 짓던 읍내로 이사 나가기 전 이야기야.
그때 우리집은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어.
좀 부끄러워 남에게 말 못할 이야기긴 하지만 ,
어떤 이들은 예상했듯이 우리 부모님은 아주 이른나이에 연애를해서 결혼식을 할 겨를도 없이
나를 낳게 되셨고, 그냥 살림을 차리게 되신거야.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할머니 집에 얹혀살게 되었고, 능력이 없다보니 할머니가 짓던 농사를 거둘 수 밖에 없었어.
그 시절, 유치원 다닐 무렵엔 아빠 손잡고 읍내에 나가면
"삼촌이라고 불러"
엄마 손 잡고 읍내에 나가면
"이모라고 불러"
라고 시킬 정도로 나에게 엄마 아빠란 존재가 너무나 젊었단 말이야.
그러다보니 동네에 아빠 친구들은 전부 장가가기 전이라 내 또래 친구가 몇 없었어.
한 학급에 겨우 11명이였을 정도니까 말야.
거기다 그 11명 마저도 동네 너머너머 사람들까지 모여서 채운 숫자였지.
집 근처엔 허허벌판에 첩첩 산중이였고,
친구라 해봤자 허수아비가 친구였어.
얼마나 심심했겠어, 장난감도 하나 없이.
생 옥수수가 내 장난감이였어.
생옥수수 머리 치렁치렁한걸 따서 머리 빗질하고 놀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아무튼 그러다가 나에게도 베프라는 존재가 생겼고,
우리 집에서 한 15분정도걸으면 나오는 큰 동네가 있었는데,
그 동네엔 고래등 같은 큰 한옥이 있었어.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을 큰집이라고 불렀어.
나중에 아빠가 알려준 이야기로는 우리 마을의 대지주 같은 가문이 살던 양반 집이였데.
그러다 큰 한옥집이 너무 낡아서 대 공사를 하게되었는데 ,
요즘에는 집 공사한다고하면 건축사무소에서 팀을 꾸려서 나오잖아?
그땐 마을에서 유명한 목수아저씨를 부르면 일꾼들을 데리고 우루루 와서 일하는 방식이였어.
쉽게말하면 그런 일꾼들이 초등학교 티를 갓 벗으려고 하는 까까머리 소년들이 잡부로 일을 거들곤 했어.
그때가 80년대 후반 나라 전체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직전이였거든.
그래서 집안 형편 때문에 일찍 취업전선에 뛰어든 소년 소녀 가장들이 많았어.
동네에 가장 큰 집이 공사를 한다니 동네 꼬마들은 전부 그 곳으로 몰려가 멀리서 목재들이 들고 나는 것을 구경했어.
특히나 좁은 동네에 외지인의 등장은 언제나 즐거운 구경거리였거든.
그러다 점점 큰집 공사가 끝날무렵이였어.
대청마루에 벌러덩 누워서 배나 긁고 있었는데, 논물을 보러 나간 아빠를 따라서 누군가 함께 오더라.
누군가 봤더니 큰집 공사할때 분주히 움직이던 한 오빠였어.
그때 거기서 본 오빠였던 거야.
어릴 땐 낯선 사람이 집에오면 좋잖아.
그래서 강아지 마냥 그 오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신난다고 까불었어.
아직도 기억이나. 엄마가
"여보, 쟨 누구에요?"
라고했더니 아빠가
"한참 바쁘니까 일손 좀 도우려고 사람 좀 사왔어"
라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한참 바쁜 농번기인지라 일손이 부족했는데,
그 큰집 공사가 끝나고 인부들이 놀길래 아빠는 가장만만한 그 까까머리 소년을 일당을 주기로하고 데리고 온것이였어.
그 날부터 나는 정말 하루하루가 재밌었어.
늘 혼자 땅에 흙파내면서 놀았는데 ,
일을 끝내고 오빠가 돌아오면 내 유치원숙제도 도와주고 대숲에 가서 대나무를 베어와서는
달력 종이 붙여서 연도 만들어주고, 꽃을 꺾어서 화관도 만들어주고.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사람이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비슷하잖아,
나는 그 오빠가 너무나 좋아서 그 어린나이에도 오빠한테 질문을 엄청 해댓어
"오빤 어디살아?
오빤 이름이뭐야?
오빤 왜 손가락 두개가 없어?
오빤 왜 운동화를 꼬불쳐신어"
등등 말이야.
오빠 무릎에 앉아서 신나게 떠들던 기억은 있는데, 시간이 지나니 오빠 목소리는 기억이 안나.
근데 잊을수 없는건 검지랑 엄지가 잘려있던 그 손가락이야.
내 기억엔 공장에서 일하다가 잘렸다고 했던것 같아.
나는 그런 손가락을보며 징그럽다고했는데,
오빠는 순진하게 웃으며 , 오히려 집에있는 동생들이 생각난다고
머리도 직접 땋아주고 목마도 태워주며 날 엄청 예뻐해줬어.
우리집에서 같이자고 같이 먹고 같이 일어나니까 정말 친오빠가 생긴것처럼 든든했어.
그렇게 그 오빠가 한 한달정도 머물렀던것같아.
전에는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고 가는게 보통이였는데,
꼭 비가 오는 날엔 오빠가 우산을 들고 학교 빠져나가는 모퉁이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사람이 사람을 마중 나오는게 얼마나 기쁜일인지 나는 그때 깨달았지.
너무너무 행복했거든.
아마 3번인가 마중을 나왔던 걸로 기억해.
근데 뭐든지 행복할때는 끝이 보이잖아.
바쁜 여름 농번기가 끝나가자 오빠는 내게 말도 없이 사라졌고, 나는 며칠을 떼를 쓰며 울었어.
엄마 아빠는 그러다 곧 말겠지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진 몰라도
나는 문득 그 오빠가 참 많이 궁금했거든.
하지만 그때당시엔 거의 떠돌이 생활을하다시피 해서 그 오빠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었어.
그런데 있잖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게
그런 일일까싶은게 너무 너무 생각이 나고
그리워해서 인진 모르겟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꼭 비가 내리면 창 밖으로 눈이 돌아가더란 말이야.
내가 쓸때없이 조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가을비가 내리고 그 다음 겨울비가 내리면
나는 어김없이 창밖의 학교 모퉁이에 시선이 닿더란 말이야.
그럼 꼭 거짓말처럼 운동장 끝 열린 교문 앞에 우산을 들고 어깨가 반쯤 기울어진 채
청재킷에 청바지를 입은 오빠가 그 곳에우두커니 서 있었어.
그럼 나는 너무나 기뻐서 말도 못할 만큼 기뻐서 실내화를 신은 채로 우산이고 뭐고 생각할겨를도 없이
그 곳으로 신나게 달려갔단 말이야.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달려가보면 항상 그곳엔 아무도 없곤 했지.
그럼 어린 나는 그게 포기가안되어 교문 모퉁이 뒷길도 가보고 비를 쏟아붓는 운동장도 한번 뒤돌아보고 나서야
풀이 꺾여서 그길로 집으로 울고가서 엄마한테 혼이 나곤 했어.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내가 오빠를 봤다고하면
엄마든 아빠든 할머니든간에 화를 버럭 내면서 그런 쓸때없는 소리 그만하라고 윽박질렀단 말이야.
그래서 그 후로 당분간은 비가 오는 날이면 학교에 가지 않았어.
자의로 안간게아니고 우리 집에서 못가게 했어.
그때는 몰랐는데 말이야.
나중엔가 대목수 아저씨를 만나 엄마가 그 오빠의 안부를 물어봤었데,
우리 집 애가 너무 궁금해하는데 언제한번 집에 들를 수 없겠냐고 말야.
근데 그 아이 지붕에서 떨어져서 허리가 부러져서 보름인가 앓더니
병원에서 객사했다고 하더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은 물론이고
하필 집안에 우리 고모마저 신이 쓰였니 어쨌니 하는 상황이라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고 ,
이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들었냐면
내가 잊을만 하면 엄마한테
"엄마 근데,
나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일해주던 그 오빠 있잖아.
진짜 보고싶다?
오빠는 지금 몇살이나 먹었을라나."
하며 운을 뗐거든
내가 고등학생 때 제법 어른 티가 나니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서
제발 그만하라고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주더라.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죽은 사람 이야기 자주 하면 좋은거 아니니
너도 이제 그만하라고 말야.
물론 내가 걱정이 되어 그렇겠지만 ,
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나는 아직도 엄마가 조금 원망스러워.
차라리 어린 나에게 죽음이란걸 인지시켜주고
오빠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오빠에게 인사를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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