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둥그렇게 모여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나?
그렇다면 정상이다. 아래 문단은 무시해라.
자다 일어난 상태인가?
그렇다면 '서론' 책갈피로 가라.
아니라면,
리더가 죽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태라 믿는다.
지금 이 노트를 읽고 있는 당신.
당황하지 말고 지금 즉시 리더가 죽은 이유를 노트에 추가해라.
잡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 빈 곳에 내가 죽은 이유를 적어라!
그 후 다시 돌아와 천천히 읽길 바란다.
병에 걸렸는지 한참 동안 고생하시다 돌아가심.
생존자 중 한 명이 때려죽임
내가 죽임.
내가 죽임.
서론
당신이 이 노트를 읽고 있다는 건
당신이 생존자를 이끄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이 노트를 이미 죽은 리더에게서 회수했건 죽기 전에 넘겨받았건 상관없다.
이제 당신이 생존자를 이끌어야 한다.
노트는 시체에서 회수하기 쉽도록 줄이 매달려 있으니, 허리나 목에 둘러매라.
즉사가 아니라면 반드시 이 노트부터 생존자들에게 넘겨라.
유언 따윈 이 세상에선 아무런 가치가 없다.
당신은 이 노트를 교과서 삼아 생존자들을 바른길로 이끌고 혹시라도 실패했을 땐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기에 기록해라.
절대 말로 전하지 말아라.
절대 기억에 의존하지 말아라.
절대 기록을 미루지 말아라.
나는 지금 상황이 꿈에서 깼을 때랑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꿈에서 깬 직후엔 꿈의 내용이 상세하게 기억나지만,
조금 지나면 꿈의 한 부분만 기억나고,
조금 더 지나면 꿈을 꿨다는 사실만이 기억난다.
그 후엔 꿈을 꿨다는 것조차 떠올리질 않지.
이렇게 어느 시점부터 모든 기억이 꿈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너도 2023년 2월 4일 이후론 아무 기억이 없겠지?
하지만 단기 기억상실증 하곤 다르게
계속 노력하고 집중하면 오래 기억해 낼 수 있다.
그러니 노트를 읽고 쓰고 계속 되새겨라!
꿈속에서 로또 번호를 받았다는 느낌으로 기를 쓰고 기억하라 이 말이다.
내가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을 분류해
책갈피처럼 표시해 놨으니, 노트의 존재를 계속 떠올리고
특정 상황에서 그 부분을 찾아내 대처해라.
그러나 당신이 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제발 부탁이다.
다른 사람에게 맡겨라.
생존자 관리법
지금 둥그렇게 모여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나?
그렇다면 정상이다. 아니라면 노트 맨 앞으로 돌아가라!
현재 생존자는 나를 포함 남자 8명 여자 6명이다
남자 7명 여자 4명이다
남자 6명 여자 3명
남자 12명 여자 6명
남자 3명 여자 2명
남자 1명 여자 2명
지금 너 자신을 포함해 살아있는 사람의 숫자를 갱신해라. 추가적인 사상자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생존자들의 이름을 적어봤지만 누가 누구인지 대조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름을 불렀는데 두 명이 대답한 이후로 이름을 쓰는 건 포기했다.
인상착의를 적어놔도 나날이 여위거나 더러워지고 씻으면 다시 깨끗해지거나
옷도 가끔 갈아입는 등 주기적으로 바뀌어 대조할 수가 없어 포기했다.
그래서 번호표를 목에 걸어줬다.
인원수가 바뀌었을 땐 절대 중간에 빈 번호가 없도록 해라.
빈 번호가 단지 실수였는지 진짜로 실종된 건지 아무도 몰라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땐 포기하는 편이 빠르다.
찾으려 해도 누굴 찾아야 하는지 모르니까.
근데 아예 번호가 없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조금 문제가 복잡해진다.
우리가 받아 준 생존자였는데 까먹고 갱신을 안 했거나 미끼일 수 있다!
미끼를 구별할 방법은 그것들은 우리보다 기억력이 좋단 점이다.
지금 네가 어디까지 기억하는 지를 이용해 질문하고 유도해라.
네가 생각하기에 절대 기억할 수 없는 걸 대답했다고 느끼면
소지한 무기로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패라.
미안하다. 지금까지 수십 마리의 미끼를 때려죽였겠지만
기억날 리가 없으니, 처음으로 살인을 하는 느낌이라 끔찍할 거다.
생존자들도 뜬금없이 사람을 두들겨 패는 너를 보고 당황할 거고...
하지만 우리 그룹은 침착한 사람들만 남아있고
내가 노트에 적은 대로 잘 시행했다면 도망가거나 제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면 잊어버릴 것이다.
이동 준비
지금 둥그렇게 모여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나?
그렇다면 정상이다. 아니라면 노트 맨 앞으로 돌아가라!
목표를 정할 땐 항상 직선거리에 있고 눈에 보이는 목표를 정해라.
그다음 저기로 가겠다는 강한 의지로 목표를 되새기고
다음을 생존자들에게 복명복창하게 해라.
'우리는 생존자들이고 우리는 동료다. 지금 [정한 목표]으(로) 이동한다!'
중간에 목표를 바꾸지 말아라.
부득이하게 목표가 시야에서 사라진다면 당황하지 말아라.
직선거리에 있는 목표를 정했고 직선으로 왔다면 잊어버리기 전에 다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거다.
아니라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거나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 경우 당신이 어찌할 방법은 없다.
이동 목표를 못 정했다면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를 쳐다볼 수 있도록 해라.
옛날엔 자동차마다 지도책이 하나씩 꽃혀있었는데!
빌어먹을 어떻게 된 게 지금은 종이로 된 지도나 나침판을 구하는 게 먹을 거 구하는 것보다 더 어렵냐고.
이동 방법
지금 둥그렇게 모여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나?
그렇다면 정상이다. 아니라면 노트 맨 앞으로 돌아가라!
이제 이동할 시간이다.
군대를 다녀왔다면 이해하기 쉽겠지.
일렬로 서서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려라.
당신은 그룹의 후방에 선다.
당신이 '우리는!' 이라고 외치면 그룹은 '생존자들이고!' 라고 대답한다.
이 구호를 이동이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외칠 거다.
이것이 생존자들이 같은 그룹에 속해있다고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음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 멈췄다면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를 쳐다볼 수 있도록 해라.
사람은 반복 행동을 할 때 머리를 비우는 경우가 있어요.
지금 상황에 가장 해서는 안 될 행동이기에 중간중간 변화를 주어서 항상 날카로운 정신상태를 유지 하게 만드세요.
인원보고.
당신이 '뒤로 번호' 라고 외치면 맨 앞사람부터 숫자를 세게 만드세요.
목표 보고.
당신이 '우리가 지금 뭘 한다고?' 라고 외치면 각자 자유롭게 대답하게 하세요.
다른 생존자 조우
지금 둥그렇게 모여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나?
그렇다면 정상이다. 아니라면 노트 맨 앞으로 돌아가라!
다른 생존자 그룹을 발견했다면 권장 사항은 그냥 무시하는 거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건 그들만의 시스템이 있단 얘기고
우리 시스템과 호환될 확률은 매우 적으니까.
혼자 낙오된 생존자만 받아들여라.
상대 그룹이 인사를 하거나 하면 받아주고 안부를 주고받는 건 상관없다.
어쨌든 같은 사람들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생존자를 만난 적이 있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노트에 적어놨으니 다른 생존자가 존재하는 건 확실할 거다.
아니….. 인사나 안부를 나누기 전에
상대 그룹이 서로 손을 잡고 있나, 우리처럼 서로의 몸을 맞대고 있나 먼저 확인해라.
서로 접촉이 없는데 생존자 그룹이라고 모여있는 건 말이 안 된다.
몇 분만 지나면 너는 누구고, 지금 여기가 어디냐고 하면서 난장판이 나야 정상이니까.
이렇게 기억을 연장할 기본적인 방법 없이
무작정 모여 다니는 것들은 모두 미끼다.
생필품 확보
지금 둥그렇게 모여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나?
그렇다면 정상이다. 아니라면 노트 맨 앞으로 돌아가라!
당연히 이동 목표를 편의점이나 마트 같은 곳으로 잡았길 빈다.
지금 할 수 있는 게 이동, 밥먹기, 잠자기 뿐이니 말이다.
식량이나 여러 물품을 확보할 때도 방식은 이동수칙과 똑같다.
함께 모여서 구호를 외치고 인원 파악을 하고 단독행동을 금한다.
식량을 확보하면서 취식하는 것도 절대 금한다.
혈당 때문인지 그냥 맛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먹는 순간 뭘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더라.
그 상황에서 그 인원을 안심시키고 우리가 누구인지
설명하고 납득 시키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비된다.
내 마지막 기억은 2023년 2월 4일에 출근하던 중이었다.
토요일이라 엄청 짜증이 났기 때문에 날짜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편의점 도시락의 유통기한을 보면 23년 2월 4일 오후 9시 뭐 이렇게 되어있다.
그러니 출근하는 그날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게 분명하다.
문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몇 달이 지났냐는 점이다.
유통기한이 23년 3월까지인 빵 같은 건 상했으니 적어도 4월은 지났다.
유통기한이 24년 10월까지인 과자류는 멀쩡하니 적어도 24년을 넘어간 건 아니다.
날씨는 그렇게 덥지 않으니까, 4월에서 5월 정도가 아닐까?
겨울이 지났다면 분명 노트에 겨울 나는 법이 적혀 있을 텐데
그런 건 없으니까 아직 23년인 게 분명하다.
젠장. 날짜 파악하는 데 너무 집중해서 생존자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미끼 색출하기
미끼는 기억력이 우리보다 좋다.
- 어디서 왔냐고 물어라.
- 어젯밤에 어디서 지냈냐고 물어라
- 근처에 음식이나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물어라.
미끼는 생존자 그룹에 포함됐다는 걸 상기시킬 필요가 없다.
- 이동 중 미끼로 의심되는 생존자의 손을 잡고 같이 걷는다.
-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손을 놓는다.
- 넉넉하게 1분 정도 기다린 후 대상이 멀쩡히 따라오는지 확인한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매서드
- 생존자들을 잠깐 등지게 만든다.
-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므로 바짝 긴장한다.
- 지금 행동의 목적은 너만 알고 있기 때문에 너는 누구보다 오래 기억을 유지할 수 있을 거다.
- 기억의 일부가 사라졌다고 느껴지면 재빨리 생존자들을 불러 바라보게 한다.
- 생존자의 표정과 눈동자를 훑어봐라.
- 어리둥절한 표정이 아닌 자는 80% 확률로 미끼다. 80%면 꽤 좋은 확률 아닐까?
정말 절망적이라면 이 매서드를 사용하세요. 효과가 굉장했어요. 정확히 반으로 줄였거든요.
성공률은 100%라고 생각해요.
욕구 해소
절대 피할 수 없는 관문이 하나 있다.
최소 하루에 한 번은 용변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가장 안전한 방법은 모두 함께 모여있는 상태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이걸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소비되지만 절대 마음이 약해지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마라.
이게 따로따로 해결한 후 난장판을 수습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누군가 필사적으로 저항한다면 혼자 보낸 후 단체로 쳐들어가라.
너무하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라.
용변뿐 아니라 샤워를 하거나 간단히 씻을때도 마찬가지다.
민망하고 부끄러운 건 결국 잊어버릴 거다. 그러니 모두 함께 모여서 해결해라.
캠핑 방법
잠잘 때 역시 문제가 꽤 많이 생긴다.
사실 지금 남아 있는 인원은 모두 침착한 성격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잠에서 깨자마자 낯선 사람들을 보고 기겁하며 뛰쳐나가거나 위협을 하기 시작했지.
당신도 잠에서 깨면 어리둥절한 채로 이 노트를 읽게 될 테니 대충 상황 파악이 됐으면 생존자들을 안심시키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를 쳐다볼 수 있도록 해라.
아직은 날이 그렇게 춥지 않으니, 지붕이 있는 곳이라면 잠을 청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 아직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지금 닥친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하니까.
겨울이 되면 그때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밤마다 이렇게 아무 데나 무단침입해서 빈집 털이 하는 느낌이 지금 가질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이기도 하다.
야외에서 캠핑 분위기 낸다고 불을 피우지 마라.
누가 자다가 '불이야!' 를 외치면서 도망간 적이 있고 그 뒤론 기억이 잘 안 난다.
절대 절대 절대로!! 잠글 수 있는 문이 있는 곳을 정하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인원 파악을 하는데 인원수가 두 배로 늘어나 있더라구요.
너무 무서워서 생존자들한테는 말을 안했는데…
나만 잘 기억하고 잘 감시하면 누가 미끼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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