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탄 - 아동 보호 시설에 새로 오신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 무서운 이야기

나폴리탄 괴담

나폴리탄 - 아동 보호 시설에 새로 오신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 무서운 이야기

JINSEE 2024. 7. 7. 11:00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동 보호 시설의 새로운 선생님으로 와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환영해요.

여기에는 착한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비록 아직 부모님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그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님을 찾으러 이 시설을 떠나게 될 거예요. 그때까지 선생님께서 애정으로 아이들을 돌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좀 더 똑똑한 친구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금방 알게 될 거예요. 그런 아이들은 남들보다 일찍 부모님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언젠가는 자신의 가족을 만나러 갈 테니까요.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전부 열 아홉살 생일이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에요. 아주 어려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도 있고,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모래성을 쌓을 수 있을 만큼의 나이를 먹은 아이들도 있어요.

선생님이 유의해주셔야 할 점이 있으니 꼭 기억해주시길 바라요.

첫번째, 선생님이 몇 살이든 어른임을 들키지 마세요.

어떤 아이들이 선생님은 왜 저희랑 달라요? 라고 물어보면 적당히 지어내시면 돼요.

여기 아이들은 사람을 의심하는 방법도 모르는 착한 아이들이니까 선생님 말을 믿을거예요, 일단은.

가장 좋은 방법은 선생님 근처의 어른, 특히 가족들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거예요.

가령 누가 ‘선생님 목소리는 왜 그렇게 굵어요?’ 라고 물어보면 ‘엄마가 살충제를 먹여서 그래’라고 대답하시고, ‘선생님 손은 왜 저보다 훨씬 커요?’라는 질문에는 ‘그건 말이지, 선생님의 아버지가 선생님의 손을 발로 밟아 부었기 때문이야.’ 라고 말해주세요.

그러다 보면 선생님을 유독 좋아하는 아이들이 생길 텐데, 그 친구들은 선생님이 말한 방법으로 여기 오게 된 애들일 거예요. 이 점을 잘 이용해서 선생님이 더 돌봐주고 싶은 아이가 있다면 유심히 관찰해보세요. 그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거예요. 물론 모두 평등하게 사랑해주시기를 바라지만요.

여기에는 눈이 다쳐 선생님의 얼굴을 못 볼 수 있는 아이들도, 고막이 파열되어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친구들도 물론 있지만 모두 마음을 다해 아껴주시면 분명 선생님의 사랑을 알아줄 거예요.

두 번째, 낮잠 시간과 취침 시간은 꼭 선생님이 챙겨주셔야 해요. 잠드는 시간은 아이들 모두 다르니 시계 앞에 있는 명단을 확인해보셔야 해요. 이름과 잠드는 시간, 잠들어야 할 곳을 정리해뒀어요. 만약 취침시간에 어떤 아이가 자기 자리 대신 다른 곳에 있다면 선생님이 직접 옳은 곳으로 데려다 주셔야 해요. 특히 어린 친구들은 냉장고와 옷장을 잘 헷갈리니까 잘 챙겨주세요. 아, 그리고 옥상이라고 적혀있는 친구들은 건물 옥상에 데려다주시고 난간 위에 올려 주시면 돼요. 잠드는 모습까지 보고 오셔도 괜찮기는 한데.... 별로 그걸 좋아하는 선생님들은 없더라고요. 여기 아이들이 많아서 좀 바쁘시긴 할거예요.

세 번째, 선생님께 갑자기 엄마나 아빠 （아니면 또 다른 가족들）를 찾으러 가겠다고 하는 아이가 있을 거예요. ‘보고 싶다’나 ‘어디있어요?’ 가 아닌 확실히 ‘만나러 가겠다’라는 의사를 전한다면 그 아이가 몇 살로 보이든 이별 준비를 해야 해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섭섭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는 준비가 다 된 거니 모쪼록 응원의 말을 부탁드리면서, 절대, 절대로 이별에 대해 아쉬운 표현이나 또 놀러오렴, 같은 표현은 안 돼요. 앞길의 행운은 빌어주시되 여기 네가 다시 돌아올 장소는 없다는걸 꼭 그 아이 마음에 새겨주세요. 전에 계시던 선생님이 서운한 마음에 아이에게 ‘보고싶을거야’라고 했다가 그 선생님이 더 이상 일을 못 하게 되셔서... 죄송한 마음에 다음에 오실 새로운 선생님께 이렇게 편지를 드려요. 아, 포옹이나 감사 인사를 받는 정도는 괜찮아요.

저도 떠나는 길에 편지를 쓰는 거라 일단은 이정도까지만 할게요. 위의 내용 정도만 숙지하셔도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시설 구석구석에 전임 선생님들이 쓴 메모가 있을 텐데 그것도 참고해보시구요. 남은 친구들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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