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쩌귀와 소리쟁이 / 웃대 무서운 이야기

“오늘은 소쩍새가 참 이쁘게도 우는구만.”
외눈박은 산길을 걸으며 해질녘에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산길을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묵을만한 주막이 나올테니 서두를 것 없었다.
지난 마을에서 이야기 값으로 제법 쏠쏠하게 주머니를 채웠으니 돈이 부족할 일도 없었기에
안그래도 여유 넘치는 외눈박의 걸음이 한결 더 가벼워 보였다.
하지만 그런 여유로움을 비웃듯이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 너댓명이 외눈박의 길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시오?”
외눈박이 능청스레 묻자 대장인 듯 한 사내가 대답했다.
“이 길 주인 되는 사람이올시다. 여길 지나가려면 통행료를 내야하니, 가진거 전부 꺼내놓고 가쇼.”
소머리도 한순간에 뎅겅 잘라버릴 듯한 큰 칼을 쓰다듬으며 으름장을 놓는 꼴을 보니
‘난 산적이니 죽고 싶지 않으면 가진거 다 내놔라’ 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 살벌한 기세는 누구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려주십사 하고 곡소리를 내 마땅하건만
외눈박은 우스운 이야기라도 들은 양 크게 웃고는 대답했다.
“이거 미안하오만 내 비루한 이야기꾼이라 가진돈이 없소이다.
그래도 내 아굿심 하나는 천석꾼 만석꾼 부럽지 않으니
아주 재미난 이야기로 값을 치룰까 하는데 어떻겠소이까?”
대장과 사내들은 그말에 실소를 던졌지만, 외눈박의 재치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것도 좋지. 어차피 심심하던 차였으니 어디 재미있는 이야기나 한번 풀어보쇼.
대신 재미없으면 그놈의 혀를 싹 하고 베어갈테니 각오하고.”
외눈박이 자신 있다는 듯 손을 들어보이며 목을 가다듬자 사내들은 길 한켠 바위에 편히 걸터 앉았다.
“이 숲은 소쩍새 소리가 이쁘게 들려서 참 좋소이다.
내 이야기만큼 노래도 좋아하는데 이 소쩍새 노래 소리 덕에 즐겁게 걷다가
딱 어울리는 이야기가 생각났지 뭐요.
안 그래도 어디서건 풀어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기회가 생겼구려.
자, 이야기는 저 산넘고 들질러 멀고먼 숲에 사는
노래하는 요괴 소쩌귀와 장님 해금꾼 소리쟁이에 대한 이야기오.”
소쩌귀라 함은 노래를 부르는 요괴인데, 생긴건 꼭 새 탈을 뒤집어쓴 여인마냥
깃털이 숭숭 나있고, 큼직한 부리까지 달려있지.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기근 때문에 죽은 사람 시체를 파먹은 소쩍새가 요괴가 된거라 합디다.
아무튼 이 소쩌귀가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아주 낭랑하고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서 사람을 홀려와서는 훅 하고 잡아먹는다는 거지.
사람고기 맛을 본 소쩌귀는 다른건 쳐다도 안보고 사람고기만 먹거든.
고작 노래로 어떻게 사람을 꾀어내나 하겠지만
이 소쩌귀 목소리에는 신묘한 힘이 있어서 듣기만 해도 몸이 노곤~ 해지고
정신은 또 몽롱~해 지는 것이.
눈은 자꾸 슬쩍 감기는데 다리는 또 절로 소쩌귀 쪽으로 향한다 이말이오.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사람을 꾀어내어 잡아먹던 소쩌귀가 어느날 소리쟁이를 만났소.
소리쟁이는 무어냐 하면 그냥 떠돌이 악사요.
앞이 안보이는 봉사지만 해금 연주실력이 기가 막히기로 유명한 이였지.
그 이가 멀리서 들리는 소쩌기 노래소리에 반해서 해금을 등에 메고 지팡이로 땅을 짚어가며 산을 탄것이오.
소쩌귀는 소리쟁이를 보자마자 한입에 꿀걱! 하려고 했지만
소리쟁이 등에 멘 해금이란 악기가 문득 궁금해지더란 말이지.
어차피 봉사라 자기 모습도 안보일테니 괜찮겠다 싶었을 거요.
소리쟁이는 가까운 곳에서 소쩌귀 노래를 가만~ 히 듣고 있다가
노래가 끝나니 감탄하며 말했소.
“제가 미천한 악사일 뿐이지만 귀는 제법 트여있다 자부했는데,
이리도 아름답고 영롱한 목소리가 있을거란건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찮은 재주긴 해도 저 역시 악사 나부랭이 인지라 과한 욕심이 나서 견딜수가 없는데
혹 내키시면 제가 아가씨 목소리에 맞추어 현을 뜯어보아도 괜찮으실런지요.”
소쩌귀에게 노래는 먹이를 유인하는 미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소리쟁이 이야기는 구미가 당겼소.
그래서 한번쯤 어울려 주기로 했지.
“좋습니다. 악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적은 없으나 그대의 실력이 좋다면 좋은 선율이 만들어 지겠지요.”
소리쟁이가 해금을 켜기 시작하자 구슬프고도 청량한 소리가 울려퍼졌고,
소쩌귀는 그 소리에 반해 자기도 모르게 심혈을 기울여 노래를 불렀지.
누구든 감탄을 터트릴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노래.
노래가 끝났을 때, 소리쟁이의 감긴 눈에선 감격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소.
소쩌귀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숨을 몰아쉬어야 했지.
둘의 조화가 그 정도로 훌륭했던거요.
그날 이후로 소리쟁이는 매일매일 소쩌귀를 찾아왔고
그의 악기와 소쩌귀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냈지.
사람을 꾀이기 위한 노래가 아닌 감동을 주기 위한 노래만을 부르게 된거요.
노랫소리가 어찌나 훌륭한지 산새도, 짐승도, 바람도, 물도 가만히 노래를 들으며 머물다 갈 정도였지.
계절이 두 번 바뀌기도 전에 소쩌귀는 사악한 요괴가 아닌 한 명의 소리꾼이 되어갔소.
소쩌귀는 지금이 아주 만족스러웠지만 내심 두려운게 있었지.
소리쟁이에게 자신이 요괴라는 사실을 들킬까 걱정이 되었던 거요.
숨긴다고 언제까지고 숨겨지지도 않을 테니까.
그리고 소리쟁이를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도 적지 않았소.
내일은 말해야지. 내일은 말해야지. 매일 같이 다짐하면서도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지.
진실을 안 소리쟁이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웠던거요.
그렇소. 어느 순간 요괴인 소쩌귀가 인간 소리쟁이에게 연모를 품게 된거요.
터무니 없다는걸 알면서도 소쩌귀는 모질게 마음먹지 못하고
진실을 아름다운 목소리에 덮어 가리며 그저 노래를 불렀소.
그러던 어느날.
소쩌귀에게 누군가 찾아왔소.
소쩌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요괴 사냥꾼이었지.
그의 모습을 본 소쩌귀는 자신이 감히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걸 대번에 알 수 있었소.
그 사냥꾼이 여간내기가 아니었거든.
죽는건 두렵지 않지만, 소리쟁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괴로웠지.
그래서 소쩌귀는 그 자리에서 요괴 사냥꾼 앞에 엎드려 빌었소.
“나으리. 이렇게 간청드리나이다. 제가 비록 죽어 없어져야 할 요괴이나,
이제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인간을 연모하고 아름다운 노래에 마음을 빼앗겼으니, 제발 한번만 모른척 넘어가주십시오.
앞으로 다시는 인간을 해치지 않겠나이다.”
사냥꾼은 소쩌귀의 말이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임을 알아챘소.
그의 눈은 거짓말을 알아채는 아주 신묘한 힘이 있었거든.
하지만 그게 진실이라 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지.
소쩌귀는 이미 수많은 인간을 잡아먹은 업보가 있었으니 말이오.
요괴 사냥꾼은 차갑지만 날카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소.
“네 말이 진실임은 내 잘 알아들었다.
하지만 과거의 업 때문에 내 그냥 넘어갈 수는 없구나.
다만 네가 정말 사악함을 버렸다면, 내게 목숨을 잃어도 원래의 소쩍새로 다시 태어날 것이니
나쁜 마음을 버리고 끝없이 정진하여 업을 청산하도록 해라.
비록 수십 수백년이 지날 동안 수많은 환생의 굴레를 넘어야 하겠지만
네 업이 완전히 끝나면 그때
네가 사모하는 이와 함께 할 수 있을거다.”
소쩌귀는 과거의 죄가 깊어 소리쟁이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후회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한편,
언젠가는 소리쟁이와 연이 다시 닿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었지.
그런 소쩌귀를 사냥꾼은 고통없이 성불을 시켜 주었고 말이오.
소쩌귀는 성불직전 소리쟁이를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고 하오.
그 소리가 어찌나 구슬픈지 요괴 사냥꾼의 눈시울 마저 붉어졌다고 하지.
요괴 사냥꾼이 떠난 후, 여느때와 같이 소리쟁이가 찾아왔고 소쩌귀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몹시도 당황했소.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소쩌귀를 기다리던 소리쟁이는 해질녘이 되자 자리를 떠났소.
그리고 다음날 해가 뜨자 마자 산을 올라 같은 자리에서 소쩌귀를 기다렸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절대 포기 하지 않았소.
언젠가는 소쩌귀가 다시 돌아올거라 믿었지.
아니 어쩌면 소쩌귀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생각 할 수 없을 만큼
그녀와의 인연과 노래가 소중해서였는지도 모르오.
나이를 먹고 산을 오르는게 버거워졌음에도 소리쟁이는 언제나처럼 산을 올라 같은자리에서 소쩌귀를 기다리다가
해가 지면 힘겹게 몸을 일으켜 돌아가곤 했지.
그렇게 평생을 돌아올 수 없는 이를 그리워하던 소리쟁이는
바람이 슬프게 풀잎을 연주하던 날, 소쩌귀를 기다리던 그 자리에서 잠들듯 눈을 감았소.
외눈박은 애처롭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가 쓰러져 죽은 곳엔 세상 들어본 적 없는 들풀이 자라났지.
그게 바로 지금은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소리쟁이풀이요.
소리쟁이가 소쩌귀를 기다리기 위해 들풀로 환생을 한 게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소쩌귀와 소리쟁이는 다시 만날게요.
연이란게 그런것이거든. 요괴든 인간이든,
산새든, 들풀이든 연이 닿으면 만나게끔 되어있소.
어쩌면 이 산에 사는 새가 소쩌귀일지도 모르고
소쩍새 소리에 기분좋게 이파리를 흔들어 대는 들풀이 소리쟁이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언젠가는 둘다 인간으로 환생해서 다시 한번 소리를 맞추며 멋진 노래를 들려줄거라 믿소이다.
자 그럼 이야기는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소.”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대장과 사내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덩치에 맞지 않게 감상에 젖을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제법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외눈박이 떠나려 하자 대장 사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그를 막아섰다.
“아니지. 아니지. 좋아 내 이야기는 재미있게 들었어.
그러니 그 혓바닥 뽑는건 참아주지.
그래도 그냥 지나가기엔 부족하니, 거 등짐은 내려놓고 가쇼.”
외눈박은 크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비싼 밥 먹고 열심히 혀를 썼더니만, 이제는 손도 쓰게 하는구만.”
무슨 말인가 싶어하던 대장의 눈앞으로 대나무 지팡이가 훅 하고 날아들었다.
‘어이쿠’ 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지는 대장의 꼴을 보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내들이
저마다 기합을 내지르며 외눈박에게 달려들었지만,
곧 대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허리며 어깨를 붙잡고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산은 소쩍새 소리만 좋은 줄 알았더니, 사내들 곡소리도 들을만 하구만.”
외눈박은 개운하다는 듯 웃어 보이며 다시금 갈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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